Guadalupe 성지 순례

Chairman's Corner

이창재 요셉 부제

Visiting N. Korea (1-1) - 성찬을 북의 형제 자매 교우들과 함께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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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2-0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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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성찬을 북의 형제 자매 교우들과 함께



1990년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 하여(1-1) 공소예절에서 교우들에게 인사



1990년 10월에 오래동안 기다리던 북한당국의 입국비자를 받아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Canada, Toronto에 계신 전충림 장로님의 노력으로 미주동포들의 북에 살고있는 가족방문이 실현되었다. 나는 반독재투쟁을 하면서 미주의 반체제인사나 친북인사들을 두루 알고 있었는데 북에 살고 있는 가족을 방문하는 것은 인도적이며 민족적 견지에서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 있는 이북 출신 교민들에게 전장로님을 소개하여 이를 주선해주기도 하였다. 그후 나는 전장로님이 발행하는 주간신문 기사를 통해서 조선기독교연맹에서 교회를, 그리고 조선천주교인 협회에서 장충성당을 정부의 지원으로 각 각 세우는데 건축헌금 지원을 받는다는 보도를 읽고, 신문사를 통하여 두곳에 각 각 헌금을 보낸바 있다. 그 후에 교회와 성당이 완공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는 1981년 부터 민주혁명전선에서 종교인으로 전향하여 북한방문을 하고자 했으나 이남 출신으로 북에 가족이 없기 때문에 가족상봉의 이유로 방북신청이 불가하므로 종교인명분으로 교회와 성당을 방문하고자 방북 신청을 해 왔으나 1990년까지 아무회답도 받지 못하였다. 1989년에 한번 가족이 없어도 관광단으로 방북한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관광이 아닌 단독으로 교회와 성당방문을 고수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1990년 10월에 해외동포 조국방문단의 일원으로 해외동포 원호위원회에서 방북초청장이 나온 것이다.

북경을 경유하는 여정이기 때문에 시카고 중국 영사관의 비자를 받아 북경에 도착하여 다음날 북경주재 조선 대사관을 방문하여 조선입국증명서를 받았다. 북경국제 공항에서 조선민항으로 조선 순안 국제공항에 내렸다. 입국절차를 마친 다음 모두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안내원에게 인계되는데 나는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참사(최철만)의 영접을 받았고 놀랍게도 최참사께서 직접 운전하는 독일산 벤츠를 타고 평양시내로 들어왔다. 최참사는 나에게 자기소개를 하였는데 해외동포원호위원회 미주담당 참사로서 수년동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나의 방북신청서류를 발견하고, 내가 그동안 미주에서 반독재투쟁을 선도하다가 1981년 종교인으로 전향하였는데 계속하여 조국의 통일사업에 관심한다는데 대하여 주목하고 이번 재외동포 조국방문단으로 초청하였으며, 자기는 휴가중인데 나의 안내를 자청했다고 하였다.

나는 그분의 자기 소개에서 그분의 진심을 느꼈고, 그분과의 만남을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그분의 차로 천주교 장충 성당과 기독교 칠곡 예배당을 방문하게 되었다. 주일 아침에 고려호텔에서 그분의 차로 우선 장충 성당을 방문하였는데 장충 성당의 신도회장 차성근(율리아노)씨의 뜨거운 영접을 받고 성당에 들어 갔다. 성당안에는 약 200-300명 가량의 신자가 앉아 있었다. 차 회장은 나와 비슷한 연배였는데 어릴 때 부터 부모를 따라 신자가 된 이래 천주교 성직을 희망하여 아직도 미혼이며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있다가 성당이 세워지면서 성당 회장으로 임명되어 봉직하고 있는 북에서는 보기 드믄 구교우 신자였다. 나는 주일예배(공소예절)가 끝난후에 차 회장의 소개로 강단에 서서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교우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다음 주일에는 최참사의 배려로 내가 교회의 공식 성직자-종신부제로서 장충성당에서 말씀의 전례를 주도하게 되었다. 마침 그 전전 주에 남에서 임수경학생 일행이 다녀간 후라서 남쪽 천주교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일행중에는 마침 전주교구의 통일 운동가인 문정현신부가 동행하여 판문점 휴전선을 경유해서 귀한하는 바람에 세상이 시끄럽던 때였다. 그런데 다행히 문신부가 이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였고 남은 성체를 성당 중앙감실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씀의 전례(종신부제의 사역)와 함께 축성된 성체로 <성찬의 전례>마지막 부분인 성찬식을 북의 형제 교우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시간인가! 북의 형제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두 손을 바쳐들고 내가 주는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실때, 우리 모두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장충성당에서 주일에 나오는 신자들이 강제 동원된 가짜 신자라고 한다. 나는 일부신자인 간부들과만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였기에 다른 신자들에 대하여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니 무엇이라 말 하겠는가? 그러나 그 전례때 우리가 성찬을 함께 하면서 그들이 흘린 눈물을 잊을 수 없으며, 비록 그들이 교리와 전례에 미숙할지라도 그들의 신심은 하느님만이 아신다고 확신한다. 우리 신앙의 판정은 우리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의 것이다.

<말씀의 전례>의 중심은 복음인데 나는 복음성경을 봉독한 다음에 평소보다 길게 20분동안 우리 조선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원을 중심으로 강론 하였다. 최참사는 나의 강론을 모두 녹음하여 가지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