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dalupe 성지 순례
Chairman's Corner
이창재 요셉 부제
Future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 장차 교회는 ?Deacon
Author
ad***
Date
2023-02-0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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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선진-서방교회, 그리고 후진-한국교회의 전망
이 창재
그리스도 교회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서방의 전통 교회가 되었고, 중세기 말 교회개혁의 시도와 분열을 거친후 근대에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후진국들을 지배함에 따라서 그리스도교회의 각 교단이 세계화 되였으나 장차 서방 전통교회인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 틀을 계속 유지하겠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다. 하느님의 교회가 성장 발전하는 기본요인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교회는 세속적인 수단으로 성장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한때 교세가 세류의 물결을 탈 수 있겠으나 그것은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회 역사가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느님의 교회는 오직 하느님이 부르신 사람들의 응답으로 성장 발전한다. 일반신자는 물론이요 봉사 일꾼들의 소명과 응답 여부가 결국 교세를 좌우한다. 오늘날 서방교회의 몰락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일반신자들의 각성과 성소(성직소명)의 고갈에 있다. 신자들의 각성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본래의 사명을 잘 못 지향해 온 결과이며 성소의 고갈은 순수하지 못했던 성직에 대한 정화과정으로, 순결한 성소의 고귀성을 새롭게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그간 세속적이던 서방교회가 하느님의 뜻으로 정화되는 시기라고 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향후 서방교회가 어디로 갈 것이며 후진 그리스도교회의 하나인 한국교회가 나아 갈 길은 어디겠나 하는 것을 묵상한다.
1. 그동안 로마 가톨릭교회로서 전통을 이어온 서방교회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심각한 정화과정을 맞이 하였다. 성소는 고갈상태이며 현란한 성화로 장식된 성당은 텅 비어 있다. 하느님의 백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이제 성당이 하느님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는가? 아니면 그들 스스로 하느님의 백성임을 포기했는가? 성당은 이제 하느님을 예배하는 사람들로 채우기 보다 음악회관 또는 미술 전시관, 항차 고급식당으로 전환되기 까지 하여 입당하는 사람들을 환영한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서구의 현실 상황을 관찰하고 나는 이 현상이 서방교회의 몰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정화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하느님의 백성이 지상교회와 분리되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연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자. 지금 시대는 계급사회가 아니고 다양한 직무의 시대이다. 교계제도는 로마제국이 서방세계의 중심이던 시대의 유물이다. 교회는 성직자만이 성무집행을 해야 한다는 틀로 성직자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성직 소명을 명분으로 교계제도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서방교회 사람들은 각성되어 성직의 소명은 사람들 위에서 공동체를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의 봉사자로 불리운 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공동체를 이끄는것은 성직자의 특권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참된 지도자는 회중의 선거로 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히게 되었다. 자연히 성직 성소의 참 뜻이 정화되어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봉사자가 될 사람만이 사제직에 나오게 되었다. 사제직을 득세라고 생각하던 성직 특권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서방교회의 장래는 오직 하느님의 성소와 응답에 달려 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그 무엇으로도 하느님의 교회를 이르킬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초대교회의 모습을 되 찾기 위하여 오순절 아침의 은총을 입기를 바란다. 서방교회는 하느님만을 의지하여 하루 빨리 로마제국의 국교라는 세속적 권위의 탈을 벗어 던저야 한다.
2. 나는 현지 미국 대교구 봉사 성직자로서 한인성당을 떠난지 오래(23년) 되었다. 어쩌다 한인 공동체에 가서 전례에 참석하고 한인사제의 강론도 듣게 되는데 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지금이 21세기인데 저 사제분은 19세기의 의식으로 사목하고 있는가? 저분은 사제로서 현 교황님의 최근 뉴스 기사도 읽지 않고, 관심도 없다는 말인가? 저분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사제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왕궁의 왕자가 된양 성직 특권의식을 가진듯 한데 마치 이조시대의 원님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팔순 가까운 이 늙은이에게도 이토록 어이없게 보이는데, 요사이 젊은 세대가 이를 어찌 감당할까 걱정이 된다. 이것이 한인성당 사목자의 일반적 경향이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한인 사목자도 문제이지만 이를 그냥 받고 있는 신자들 역시 문제이다. 한국교회는 성직 성소의 추세, 한국 신학교의 교육현황, 사제 인사 행정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재 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미국에 이민 오기 이전에도 한국교회가 너무 로마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초창기에 선교사의 입국이 없어 스스로 북경에 찾아가 복음을 받아온 주체교회였는데 지금은 너무 성직 중심, 성직자에 의존하는 교회가 되었다. 한때 한국교회의 수장이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북한(평양)교회는 성직자가 없기 때문에 교회가 아니라고 까지 말하는 것을 듣고 한국교회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었다. <교회인가? 아닌가?>는 성직자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요, 하느님의 <백성이냐 아니냐?> 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의 백성이 먼저고 성직자는 그 다음이다. 이것이 오순절 은총의 그리스도 교회인 것이다.
전통교회는 주님이 현존하는 성찬의 전례를 예배의 중심으로 하여 왔고, 이 전례는 오직 사도와 공동체의 원로들(오늘날의 사제제도)에게만 허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선 초대 교회 5년 동안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 성찬의 전례가 없었고 이 때문에 교회가 아니라는 편협한 견해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당시 조선교회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자체의 성직제도(주교와 사제)를 세우기도 하였다. 곧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이를 말소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교회사에 나오는 <假 성직제도>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감히 우리 조선교회사의 독창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신 교회 성직제도의 <元形>이 아니겠는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신학과 새로운 의식으로 장차 서방교회와 세계교회를 개혁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 싶다.
3. 오늘날 사제의 독신제와 여성사제 서임에 대하여 계속되는 교회 저변의 제안에 대한 바디칸 당국의 전통적인 반응을 보면서 장차 교회의 전망을 우려한다. 나는 신학자가 아니나 이것은 신학의 주제이면서도 주님의 뜻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이기 때문이다.
이 창재
그리스도 교회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서방의 전통 교회가 되었고, 중세기 말 교회개혁의 시도와 분열을 거친후 근대에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후진국들을 지배함에 따라서 그리스도교회의 각 교단이 세계화 되였으나 장차 서방 전통교회인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 틀을 계속 유지하겠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다. 하느님의 교회가 성장 발전하는 기본요인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교회는 세속적인 수단으로 성장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한때 교세가 세류의 물결을 탈 수 있겠으나 그것은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회 역사가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느님의 교회는 오직 하느님이 부르신 사람들의 응답으로 성장 발전한다. 일반신자는 물론이요 봉사 일꾼들의 소명과 응답 여부가 결국 교세를 좌우한다. 오늘날 서방교회의 몰락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일반신자들의 각성과 성소(성직소명)의 고갈에 있다. 신자들의 각성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본래의 사명을 잘 못 지향해 온 결과이며 성소의 고갈은 순수하지 못했던 성직에 대한 정화과정으로, 순결한 성소의 고귀성을 새롭게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그간 세속적이던 서방교회가 하느님의 뜻으로 정화되는 시기라고 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향후 서방교회가 어디로 갈 것이며 후진 그리스도교회의 하나인 한국교회가 나아 갈 길은 어디겠나 하는 것을 묵상한다.
1. 그동안 로마 가톨릭교회로서 전통을 이어온 서방교회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심각한 정화과정을 맞이 하였다. 성소는 고갈상태이며 현란한 성화로 장식된 성당은 텅 비어 있다. 하느님의 백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이제 성당이 하느님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는가? 아니면 그들 스스로 하느님의 백성임을 포기했는가? 성당은 이제 하느님을 예배하는 사람들로 채우기 보다 음악회관 또는 미술 전시관, 항차 고급식당으로 전환되기 까지 하여 입당하는 사람들을 환영한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서구의 현실 상황을 관찰하고 나는 이 현상이 서방교회의 몰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정화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하느님의 백성이 지상교회와 분리되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연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자. 지금 시대는 계급사회가 아니고 다양한 직무의 시대이다. 교계제도는 로마제국이 서방세계의 중심이던 시대의 유물이다. 교회는 성직자만이 성무집행을 해야 한다는 틀로 성직자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성직 소명을 명분으로 교계제도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서방교회 사람들은 각성되어 성직의 소명은 사람들 위에서 공동체를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의 봉사자로 불리운 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공동체를 이끄는것은 성직자의 특권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참된 지도자는 회중의 선거로 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히게 되었다. 자연히 성직 성소의 참 뜻이 정화되어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봉사자가 될 사람만이 사제직에 나오게 되었다. 사제직을 득세라고 생각하던 성직 특권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서방교회의 장래는 오직 하느님의 성소와 응답에 달려 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그 무엇으로도 하느님의 교회를 이르킬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초대교회의 모습을 되 찾기 위하여 오순절 아침의 은총을 입기를 바란다. 서방교회는 하느님만을 의지하여 하루 빨리 로마제국의 국교라는 세속적 권위의 탈을 벗어 던저야 한다.
2. 나는 현지 미국 대교구 봉사 성직자로서 한인성당을 떠난지 오래(23년) 되었다. 어쩌다 한인 공동체에 가서 전례에 참석하고 한인사제의 강론도 듣게 되는데 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지금이 21세기인데 저 사제분은 19세기의 의식으로 사목하고 있는가? 저분은 사제로서 현 교황님의 최근 뉴스 기사도 읽지 않고, 관심도 없다는 말인가? 저분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사제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왕궁의 왕자가 된양 성직 특권의식을 가진듯 한데 마치 이조시대의 원님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팔순 가까운 이 늙은이에게도 이토록 어이없게 보이는데, 요사이 젊은 세대가 이를 어찌 감당할까 걱정이 된다. 이것이 한인성당 사목자의 일반적 경향이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한인 사목자도 문제이지만 이를 그냥 받고 있는 신자들 역시 문제이다. 한국교회는 성직 성소의 추세, 한국 신학교의 교육현황, 사제 인사 행정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재 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미국에 이민 오기 이전에도 한국교회가 너무 로마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초창기에 선교사의 입국이 없어 스스로 북경에 찾아가 복음을 받아온 주체교회였는데 지금은 너무 성직 중심, 성직자에 의존하는 교회가 되었다. 한때 한국교회의 수장이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북한(평양)교회는 성직자가 없기 때문에 교회가 아니라고 까지 말하는 것을 듣고 한국교회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었다. <교회인가? 아닌가?>는 성직자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요, 하느님의 <백성이냐 아니냐?> 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의 백성이 먼저고 성직자는 그 다음이다. 이것이 오순절 은총의 그리스도 교회인 것이다.
전통교회는 주님이 현존하는 성찬의 전례를 예배의 중심으로 하여 왔고, 이 전례는 오직 사도와 공동체의 원로들(오늘날의 사제제도)에게만 허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선 초대 교회 5년 동안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 성찬의 전례가 없었고 이 때문에 교회가 아니라는 편협한 견해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당시 조선교회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자체의 성직제도(주교와 사제)를 세우기도 하였다. 곧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이를 말소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교회사에 나오는 <假 성직제도>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감히 우리 조선교회사의 독창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신 교회 성직제도의 <元形>이 아니겠는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신학과 새로운 의식으로 장차 서방교회와 세계교회를 개혁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 싶다.
3. 오늘날 사제의 독신제와 여성사제 서임에 대하여 계속되는 교회 저변의 제안에 대한 바디칸 당국의 전통적인 반응을 보면서 장차 교회의 전망을 우려한다. 나는 신학자가 아니나 이것은 신학의 주제이면서도 주님의 뜻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