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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Vancouver Seminar, October 202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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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img src="https://leetaik.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310/6540ea9fb57066087585.jpg" alt="" />]]></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31 Oct 2023 11:54:27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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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KAPC is Tax Exemp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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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KAPC obtained tax-exempt status as of March 19, 2015. Donations to KAPC are tax-deductible expenses, you can deduct them to decrease your taxable income, which decreases the amount of taxes.</div><div><br /></div><div><div><br /></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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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9:48:3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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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순절 / 성령강림 대축일의 소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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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오순절 / 성령강림 대축일의 소망



초대 그리스도공동체 처럼, 오순절 아침의 은총으로 충만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선 중세적인 교계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소통하는 오순절 아침의 찬미기도를 전례적으로 재현하고, 각 지역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친교의 삶을 적극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창재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 (요한 20, 23) 하셨다.  이것이 4복음서에 나오는 유일한 성령강림의 기사이다. 복음서의 성령강림기사는 너무나 미진하다. 사도행전 2장에 성령강림의 실상이 잘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고별하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여 성령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사실 제자들은 오순절 이전에는 성령에 대하여 체험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을 준비 시켰다. 그리고도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한 자리에 모여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결국 성령을 체험하신 성모님을 의지하게 되고 성모님을 가운데 모시고 이층방에서 9일 동안 기도한다. 이렇게 9일을 보낸 다음날; 오순절 아침에 드디어 주님이 보내신 성령께서 내려 오셨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tongues as of fire) 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 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 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foreign tongues)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옐루살렘에는 세계각처 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있었는데,  그 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 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놀라고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사도행전 2, 1-7)
오순절 아침ㅡ하느님 성령을 충만히 받은 제자들의 생애가 새로운 생명으로 전환 되었다. 오순절의 은총이다. 우리도 성령을 받으면 우리의 지난 생애는 성령의 불로 달구어 진다. 우리 삶 가운데 새로운 생명이 활활 타 오른다. 성령의 불은 어떤 시련에도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이다. 하느님 성령의 불ㅡ 성령의 시각적 표상이 tongues as of fire이며, 그 청각적 표상이 foreign tongues 이다. 그 동안 교회미술는 성령의 표상으로 비들기를 사용하였으나 이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성령이 내려오는 동태를  표상하는 것이다. 

오순절 아침ㅡ 성령의 역사는 tongues 과 같은 불꽃이다.  tongues 과  같은 성령의 불꽃과 함께 하느님과 소통하는 제자들의 tongues  소리가 동반한다. 어떤이들는 성령 안에서의 소통를 표상하는 이런 tongues 소리에  민감한데,  2000년전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순절 아침에 제자들이 성령충만 으로 주님을  찬미하는 tongues 소리를 듣고 모두 놀라워 했다. 이를 보고 그들 가운데 더러는 새 포도주 에 취했군, 하며 비웃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 13)
바로, 그때에 베드로사도가 열한사도와 함께 일어나 큰 소리로 오순절 설교를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 하느님의 아들을 증거하였다. 그 자리에서 베드로사도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회두 하여 세례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3천명이나 되었다. (사도행전 2, 14-41) 

이렇게 형성된 첫 신자 공동체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이 공동체는 부족함이 없이 풍성하였으니,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사도행전 2, 42-47)
이렇게 그리스도인 공동체 - 초대교회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오순절을 그리스도 교회의 생일이라 하는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기사가 복음서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오순절을 재현할 것인가ㅡ 오순절의 재현은 tongues 의 재현이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 보건대,  유감스럽게 교회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점차 tongues 을 경시함과 더불어 오순절 아침의 은총은 쇠진되고, 성직자 중심의 교권이 중시되었던 것이다. 장차 다시 오순절 아침의 은총으로 충만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선 중세적인 교계제도를 혁신하고, 하느님과 소통하는 tongues -찬미기도를 전례적으로 실현하고, 초대 공동체 처럼 각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친교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다. 



 + 주님이여 우리 심령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 Alleluia!  Alleluia!]]></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55: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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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미주 종신부제(Permanent Deacons) 배출에 대한 서울 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의 견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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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미주 한인교회 공동체에서 종신부제(Permanent Deacons)가 배출되는데 대한 서울 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의 부정적 입장  / 그로 인한 갈등 사례.
이 창재
1) 
존경하는 故 김수환 추기경(서울대교구장)께서는 생전에 미주교구의 한인공동체에서 종신부제(봉사성직자/Permanent Deacon)가 배출되고 있는데 대하여 우려하는ㅡ 그분의 견해가 누차 보도되었다.ㅡ제II차 바디칸 공의회에서 종신봉사성직자(종신부제)제도를 부활시키고, 그 시행을 각나라 주교회의 결정에 의존하였는데, 미주교회의 경우 사제성소의 감소현상으로 인하여 사제를 도와줄 종신부제가 필요하지만, 한국 처럼 사제성소가 풍요한 나라에서는 종신 부제를 배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ㅡ 사실 서방교회에서 급격한 사제성소의 감소로 인하여 종신부제는 사목상 사제를 도와줄 수 있음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제(주교포함)에게 부여된 7성사중 종신부제들은 성세와 혼인, 고작 두성사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사제가 부족한 서방교회의 사목에 그리 큰 비중을 주겠는가 의문이다.

그러나 II차 바디칸 공의회 정신에서 우리는 종신 봉사성직자(부제)가 해야 할 사명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종신부제는 일반적으로 남편이고, 아버지로서 한 가정의 가장이며, 다양한 전문직종에서 일하는 직장인 - 일반 사회성원으로서, 가정과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살아야 하는 가정사목과 사회사목의 사역을 사명으로 하고, 보통 주일에 또는 주중에 사제를 도와서 교회공동체에서 봉사하는 사역을 사명으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 故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II차 바디칸 공의회 정신을 몰랐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그 연유가 무엇인가?
김 추기경께서는 한국교계의 수장이며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으로 한국교회와 서울대교구를 사랑하는 지도자로서 교회현실을 감안하여 미주교구의 한인교회 종신부제 배출 현상이 한국 교회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전통 교계제도하에서 교구장이 교구의 수장이듯이 본당공동체의 수장은 본당주임사제이다.  현재 각 공동체의 평신도 사목회장들은 대부분 사회적 직위와 명망, 재력과 경험,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사목회의는 교회법상 본당주임사제의 자문기관이다. 만일 한국교회에 종신봉사 성직(부제)제도가 도입되면 장래가 촉망되는 교회 봉사지망자들이 많이 종신부제수련과정에 지원하게 될 것이고, 수련을 마치고 종신봉사성직자로 서품되어, 각 공동체의 부제로 임명되어서 매주 주일미사에서 관례대로 말씀의 전례를 관장/ 복음을 선포하고, 매월 한번씩 주일 강론을 하며, 주중에는 미사보조 또는 말씀의 전례와 영성체예절을 하고, 환자방문사목과  전문분야에 따라, 구치소, 교도소사목, 혼인성사 준비교육과 주례, 각종 피정과 강좌, 세미나 지도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사제를 교회가 설립한 학교장, 병원장에 임명하고 있는 실정인데, 의사출신의 종신부제가 배출되고, 대학교수출신의 종신부제가 배출 된 다음에도 계속 현재의 관행이 통용될 것인가?  이렇게,  제II차 바디칸 공의회정신은 교회가 현존 사회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도로 종신봉사성직제도를 부활시킨 것 이었다.

2) 
이와 같은 정황에서 미주 한인공동체의 하나인, Saint Paul and Minneapolis 대교구 소속 &lt;미네소타 성 김대건 교회&gt; 출신으로  
이창재가 대교구 Permanent Deacon formation Program (종신부제 수련과정) 에서 수련중인데,  1986년 9월 27일에 수료하면 대주교로 부터 종신부제 서품을 받게 되었다.
사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서울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73년 박정권의 유신선포로 도미하여 미네소타에 정착한 이창재(요셉)의 내력을 소상히 잘 아시는 분이다.
이창재는 1973년 7월에 미네소타에 정착, 9월 하순에 몇몇 교우들과 함께 &lt;미네소타 한인공동체&gt;의 설립에 참여하였다. 마침 St Thomas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든 최치규 신부(서울 대교구 소속)를 뫼시고, 주일마다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미주 각 도시에 산재한  4.19/ 6.3 동지들와 연합하여 재미 한국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였고, 1979년초에는 Washington, DC 에서 &lt;한국민주혁명당&gt;이 결성되자, 당의 대표를 맡게 되면서, 미네소타 한인공동체의 교우회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런데 1979년 10월27일 박통이 김재규(당시 한국중앙정보부장) 의 권총에 죽은 다음, 전두환 (당시 육국 보안사령관) 의 작당으로 1080년에 &lt;광주 5.18항쟁사태&gt;가 일어났고, 결국 전두환 정권이 들어 섰든 것이다.
1980년 9월 마지막 주간, 이창재는 전두환에 의하여 귀국의 꿈이 좌절되면서 오랫동안 실의에 빠져 있을 때인데 &lt;미네소타 한인교회&gt; 에서 박창득신부(NJ)의 지도로 저녁마다 계속된 LSS (성령안의 삶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이창재는 주일에 송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홀로 기도 중 &lt;오순절의 은총&gt;을 충만히 받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 나게 되었다. 이어서 최신부를 도와 공동체 안에 &lt;찬미와 치유를 위한 기도회&gt;를 시작하면서, 귀국의 꿈을 접고, 이민국에 시민권을 신청하였다. 이어서 최신부는 서울대교구로 귀환하고, 이창재는 &lt;주님의 종&gt;으로 봉사하고자, 현지 대교구 디컨수련과정 에 들어 가게 된 것이었다.
지난 수년간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미주에 나오실 때 마다 미네소타에 오시어, 열악한 조건하에서 사목하시는 최신부를 결려하셨는데, 이창재가 교우회장으로 있을 때 몇번 집에 뫼신적도 있었고, 근처 호텔에 계실 때는 아침 일찍 불려가서 미국의 극동정책에 대하여 질문하시며, 한국이 민주화되면 귀국하여 크게 일하기를 바란다는 격려 말씀도 하셨다.
그런데 이창재가 현지 대교구 에 들어간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공동체에 오셔서 줄을 선 신자들과 차례로 인사하셨는데, 이창재 앞에 와서 패스하시고, 다음 교우와 악수를 하셨든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당아지 않은 사람이 믿을 수 있겠는가?  유난히 인자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이창재를 외면 하셨다니---. 

3)
1968년 4월에 이미 현지 대교구 책임자와 이창재는 9월에 디컨으로 서품되면 한인공동체에서 종신부제로  봉사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후 갑짜기 한인공동체 주임사제가 교체되었다. 제3대 주임사제로 전용선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리고 서울 대교구에서 젊은 나이에 보좌주교가 된 강우일 주교가 미네소타를 방문하고, 역시 젊은 나이에 이곳 대교구 보좌주교가 된 Bp. Robert Carlson 주교를 만나고 돌아 갔다.  그리고 전해지는 전신부의 말인즉 - '자기가 알기로는 우리 공동체에는 부제가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디컨 서품식을 일주일 앞두고,  이창재는 대교구청에서 호출을 받고 들어갔는데, 문제가 일어난 것을 알았다. 내용인즉, 서품 받을 디컨들의 인사발령 결재상신중에 서울 강주교의 부탁을 받은 Bp. Robert Carlson 주교가  Dn. Joseph Chang J Lee 를 한인공둉체가 아닌 University of Minnesota Campus 지역의 St. Lawrence Church 의 디컨으로 내정했다는 사실이 들어나고, 대주교께서 진로하시며,  한인 공동체를 위하여 사제를 파견하는 서울대교구의 부당한 행위를 언급하시고. 보좌주교를 질타하시면서 원상복귀시켰다. 이렇게 풍파는 깁숙히 내연된채, 계획대로 이창재는1968년 9월 27일 Saint Paul and Minneapolis Cathedral 에서 Archbp. John R. Roach, D.D. 대주교로 부터 종신 디컨으로 서품을 받고, 동시에 한인 공동체의 디컨으로 배속 되었다. 그런데, 1년동안 이창재 부제는 이름만 부제일 뿐, 서울에서 파견나온 전용선신부의 비협조로 부제사역을 수행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결국 이를 알게 된 대주교는 이창재 부제의 청원대로, 특별 인사발령에 의해 1987년 9월에 현지 미국본당  의 Deacon 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4)
그 다음 두번째로 문제가 1980년대 말기에 일어났다. 미국의 수도가 있는 워싱톤 대교구 소속으로 오래된 한인공동체가 있는데, 신자수도 많고 종신부제도 세분이 있었다. 대전교구에서 사제를 파견하고 있었는데, 임기 만료로 한국사제가 돌아 갔는데, 대전교구에 복귀하지 않은 사태로 인하여, 대전교구는 워싱톤 대교구에 사제파견을 접기로 결정하였고, 대신 서울 대교구에서 사제를 파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 대교구에서 한인공동체에 파견되어 부임한 사제가  세분 종신부제를 불러놓고, 앞으로 한인공동체에서는 종신부제가 필요 없으니 다른공동체로 이동할 것을 요구하였고, 세분 종신부제는 결국 대교구장의 승인을 받아 각기 집 근처의 미국공동체로 이동함으로서 대외적으로는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5)
예상한대로, 그 다음 세번째로 서울대교구 파견사제가 주임사제로 있는 뉴욕 Brooklyn교구 소속의 오래된 한인공동체에서 종신부제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이 한인공동체는 작고하신 정욱진 신부께서 20년(1973-1992)간 심혈을 기울려  사목하신 공동체이며, 종신부제도 하나 키우셨다.  정 신부께서 고령으로 퇴임하시고,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에서 파견되어 온 사제들의 종신부제직에 대한 비협조로 인하여 공동체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결국 교구장의 전유 교도권에 의하여,  그간 사제를 파견해 온 서울대교구의 퇴출이라는 불상사로 사태가 종결되었다.

이로서 김수환 추기경의 미주한인종신부제 배출에 대한 입장은 선명하게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입장이 과연 제II차 바디칸 공의회 정신에 합당한 것인지? 이것이 과연 한국교회의 장래를 위하여 올바른 길이었는지?  이제 &lt;한국주교회의&gt;는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현지교구 Brooklyn교구장이 한인 공동체에 보낸 경고서한을 아래에 소개한다)
 &lt;브루크린 교구장 데일리 주교의 교회법적 경고 서한&gt;
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 공동체에게.
주님 안에서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교구는 이민자들의 교구입니다. 하느님 백성 중 이러한 이민자들의 합법적인 목자들로서 저의 선임자들과 저는 타국에서 미국으로 온 사람들의 필요에 예민하고자 성실히 노력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민자들의 문화적 전통의 풍요로움과 그 현존으로 우리 교구에 은총을 가져다 준 모든 사람들의 영적 물적 필요에 봉사하는 노력을 브루클린과 퀸즈에서 지속해 왔습니다. 다양한 민족 배경에서 오는 독특한 선물들과 공헌들을 존중하면서, 우리는 새로이 이민 온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사회에 토착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며 그리하여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 벌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방식으로 오랫동안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에게 사목적인 봉사를 해왔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의 선임자이신 프란시스 머가버로 (Francis J. Mugavero) 주교님께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브루클린 교구의 구성원이 된 한국에서 온 가톨릭 이민자들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하여 한국인 사목부를 (Korean Apostolate) 설립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교회의 도움을 구하는 한국 가톨릭 공동체를 위한 센터로 봉헌되었습니다.

지역 교구 교회의 신앙 공동체 부분이 된 사람들에게 사목적인 봉사, 특별히 말씀과 성사로 사목적 봉사를 제공하는 것은 항상 지역 교구 교회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성직자의 부족 때문에 복음화를 위한 이러한 기회들에 더 적절하게 응답하기 위하여 저의 선임자들과 저는 한국 이민자들에게 사목적인 책임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브루클린 교구의 목자를 도와주기 위하여 때때로 사제들을 파견해 주신 한국 주교님들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저는 특별한 애정과 감사의 정을 지니고 우리 교구 성직자들의 중요한 부분이 되셨던 정 토마스 신부님을 기억합니다. 정 토마스 신부님께서는 저의 선임자들과 저에게 깊은 충성심과 존경심을 지니고 복음화라는 사제적 사명을 수행해 나가셨으며 교회 안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공동체 구성원의 성소를 개발시키셨습니다. 특히 진명 바오로 부제의 성소를 개발시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브루클린 교구의 한국인 가톨릭 공동체의 영적 물적 필요에 더 잘 봉사할 수 있기 위하여 한국어를 배우는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우리 교구의 미국 신부님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 해 동안 토마스 브로스난 신부님께서는 사심 없이 봉사를 하였으며 새로운 이민자들과 이들이 처한 새로운 환경 사이의 다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인 사목부를 위해서 일부의 사제들을 보내주시는 한국에 계신 주교님들의 관대함에 여전히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습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에 있는 신앙 공동체의 필요에 봉사할 수 있는 한국 태생의 브루클린 교구의 사제들을 지니고 있는 축복을 보면서 우리 교구의 교회가 "시대를 맞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기뻐합니다.

슬프게도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에 파견된 성직자 교체에 대하여 제가 한 결정에 일부의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저항해왔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부분적으로 이 한국 가톨릭 공동체와 브루클린 교구의 합법적인 목자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참된 본질에 관한 오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지난여름 동안 이러한 오해가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하여 성당 공동체의 일부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진술들에 의해 가중되었습니다. 이 공동체의 일치에 가한 이들의 공격 초점이 진명 부제에 대한 정당화되지 않은 고발로 옮겨졌으며, 성찬의 거행에 엄청난 방해로 이끌어갔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말하는 것처럼 성찬례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며 절정"입니다. 성찬례는 주님과 또 서로의 일치를 표현하고 심화시키는 수단입니다. 이 일치는 성찬례가 거행되는 곳의 주교와의 일치로 표현됩니다.

여러 해 동안 한국 가톨릭 공동체는 브루클린 교구 안에서 거행되는 성찬례에 기도하며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일치를 심화시켜왔습니다. 평신도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과 브루클린 교구에서 온 사제들과 부제들로서 봉사해온 사람들은 이러한 일치를 강화시켜나가는데 있어서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일치를 파괴한 소동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다른 거룩한 사목자들과 마찬가지로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에 있는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제가 임명한 진명 부제가 자신들의 봉사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교회에 들어가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았습니다. 더욱이 항의는 성찬례를 통하여 공동체 속에 현존해야 할 조화를 더 손상시켰습니다.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러한 방해의 이유와 목적은 우리 모두가 우리 교구의 교회와 교구의 합법적인 목자와 노력이 요하는 목자의 사명을 도와주는 성스러운 사목자들을 지녀야 한다는 이해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지난 몇 달간 나는 주교 대리자들을 통하여, 가톨릭 이민 사무국을 통하여, 심지어 제 자신의 개인적인 사목 방문을 통하여 화해를 역설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정한 개인들의 발기로 지속된 성찬 거행의 방해는 교구 안에 있는 가톨릭 공동체에 문제가 되었으며,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에 있는 공동체의 나머지 사람들의 명성과 영적인 복락에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것이 지속되는 것이 허용될 수 없습니다. 

2002년 12월 14일과 15일 주간에 여러분들에게 읽혀진 저의 최근 편지에서 제가 말한 것처럼, 성찬의 거행을 방해한 사람들이 방해 행위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저는 아주 깊이 영향을 입은 공동체의 무고한 구성원들의 신앙과 명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이러한 항의들에 종식을 고하기 위하여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법의 규정에 따라 저는 아래의 "교회법적 경고"를 발송합니다. 성찬례의 이러한 방해들이나 사제나 부제의 사목 활동을 막는 것이 지속되면, 저는 성 정하상 성당을 폐쇄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이 교회법적 경고는 공동체의 모든 신자들이 브루클린 주교와 또 말씀과 성사로 여러분들에게 봉사하도록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에 주교가 임명한 거룩한 사목자들과의 조화와 일치를 이루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성당이 페쇄되면 미사, 결혼식, 세례식, 장례식, 화해 성사, 혹은 기타 성사들이 거기에서 거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성당에서는 기도 모임, 어린이들과 성인들을 위한 교리 교육들도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난 번 편지에서 제가 명령한 것처럼 진명 부제가 사목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진명 부제나 교구의 다른 사람에 반대하는 진술문을 담고 있는 유인물의 배부나 붉은 셔츠를 입는 것과 같이 과거에 있었던 것과 같은  항의의 표시가 없도록 다시 한번 명령합니다. 나아가 성찬 거행의 조화와 일치를 방해하는 어떠한 행위들도 없도록 또한 명령합니다. 이러한 명령들이 2003년 1월 12일까지 준수되지 않는다면, 저로서는 성당을 페쇄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 성당이 폐쇄되면, 분명한 회개의 표시가 명백하지 않는 한 다시 열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표시들은 방해에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불일치를 드러내는 것을 다시는 벌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진명 부제가 누리는 사목과 성품 성사에 대한 이해를 약속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성당이 다시 문을 열게 될 때, 그 이해는 부제의 이러한 사목 수행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 성찬 거행과 이 가톨릭 공동체의 합법적인 목자인 저에게 보여준 무례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사과를 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고 있는 영적 일치를 유지하시기를 여러분 모두에게 역설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님 안에서 저의 영적인 아들딸들이기에, 저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분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를 요청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고린토인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뜻으로 굳게 단합하십시오." (고린 전 1,10)

기도 중에 기억할 것을 약속드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2002년 12월 26일   
브루클린 교구장  토마스 데일리 주교]]></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53: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부활하신 주님의 약속/ 우리들의 부활 문제]]></title>
			<link><![CDATA[https://leetaik.com/?kboard_content_redirect=38]]></link>
			<description><![CDATA[부활하신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들의 부활을 확신하는가?                   
이 창재 
                                            
(문제의 제기) 부활절을 맞아 역사적인 사실을 넘어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수많은 신자들이 예수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통하여 예수부활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부활을 어둡게 하는 하나의 의혹이 있다. 그 의혹은 &lt;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gt;에 대한 의혹이 아니다. 이는 사도들 이래 오랜 세월을 통하여 계속 확인되었고 수 많은 신자들의 순교를 통하여 확인됨으로서 이제는 예수부활이 예수의 죽음과 함께 역사적 사화로 정착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제기되는 문제는 우리가 과연 주님의 약속대로 우리들의 부활을 확신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를 묵상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절에 우리에게 제기되는 마지막 의혹이다. 
예수님의 구원(순명과 희생)으로 우리 인류의 운명이 전환되었다. 무덤을 막아 놓았든 바위돌이 치워지듯이 사람이 하느님에게 가는 길이 확 트였다. 우리 사람은 모두 이제 예수님의 구원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사람은 다 불사 불멸하는 영혼과 함께 창조 되었으니 우리가 죽은 다음에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고,  순결한 영혼은 아무 장애 없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로 간다. 이는 하느님 성부의 자비와 성자의 구원사업으로 성취되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각 사람의 구원이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부활한다고 약속했다. 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 사도신경에 우리의 신앙신조로 포함되어 있다. 미사 전례나 모든 정규기도문에 나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암기하고 있으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한번 이를 묵상하자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제의 응답)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lt;사도신경&gt;을 외우면서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들이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여 살아 갈 수 있는가 하는데 대하여 묵상한다. 어쩌면 우리 삶 가운데 가로 놓여 있는 바위 돌이 너무나 크고 엄청나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기는 오히려 쉽다. 그러나 세말에  &lt;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게 된다&gt;는 것을 확신하는가? 
어둠 가운데 빛을 창조하시고 없는데(無)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예수님처럼 나에게도 새로 부활한 생명을 주시는가? &lt;부활절&gt;은 이 물음에 대하여 &lt;알렐루야 아멘&gt;이라 대답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한 처음에 말씀으로(요한복음 1, 1-4)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면 당연히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즉 부활의 생명으로 창조하신다. 

이를 확인시켜 주시는 분이 바로 오순절 아침에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오순절 아침의 은총(성령)을  간구한다. 사도들이 그러 했듯이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의 약속은 오순절 아침의 은총(성령)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주님이 보내주신 오순절 아침의 은총- &lt;성령강림&gt;으로 우리들에게 완성된다. 아멘 알렐루야 !]]></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49:4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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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성령세례의 필수성에 대하여 - Francis MacNutt]]></title>
			<link><![CDATA[https://leetaik.com/?kboard_content_redirect=37]]></link>
			<description><![CDATA[성령세례의 필수성에 대하여

Francis MacNutt (NSC-CharisCenterUSA/ PENTECOSTToday -Winter 2016) / 김준석(번역)

들어가기에 앞서, 성령은사적 쇄신이 교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 40여년간, 교회 전반에 걸친 희망적 변화들을 목격해 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더욱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상당히 좋은 기회들을 놓쳤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사적 쇄신의 핵심은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있어 성령에 의한 세례는 필수적이며, 개인의 고유한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제가 여기서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치유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곁에는 고통중에 있을 때 기도를 청하며 의지할 수 있는 동료 신자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세례는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의 변화와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 성령 세례는 하느님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개인이 직면하는 여러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현명한 답으로 향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더 넓은 의미, 즉 사회적 차원에서 성령세례는 과거의 관습적 사고에서 공동체를 해방시켜 긍정적 변화를 촉발시킵니다.

성령의 힘은 치유와 구마와 같은 예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우리 자신들이 매개가 되어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데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악과 병마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우리가 요청하면 반드시 주어집니다. 저는 성령세례를 인간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현존과 그분의 전지전능함을 동시에 체험하게 하는 한 개인의 삶에 있어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소명에 따라 충실히 살기 위해서는 성령세례는 조건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을 체험하기 전에는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기다리던 제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부여된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주신 사역을 계속해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성령은사적 쇄신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치유에 대한 믿음의 회복입니다. 즉, 기도를 통해서 육적, 영적, 심리적인 그 어떠한 고통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성령은사적 쇄신 운동의 최종적 결과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도 성령의 도우심에 의한 기도를 통해서 병든 이를 고통과 억압 속에서 해방 시켜줄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 부디 저희 공동체에 성령의 은총에 대한 더 넓은 이해와 믿음을 주십시오.

(필자는 현대 오순절 운동 초창기로 부터 성령세례와 탁월한 치유은사로, 미주 성령은사적 쇄신에 크게 기여하신 분인데, 1980년에-Christian Healing Ministries- 를 설립하여 치유봉사자를 양성하고 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48:3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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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우리 인생의 목적(수정)]]></title>
			<link><![CDATA[https://leetaik.com/?kboard_content_redirect=36]]></link>
			<description><![CDATA[우리 인생의 목적(수정)



마태오 복음(6, 26-34)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수 없다.  - 너희는 주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우리는 가끔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는 사는가? 과연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먹기위해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오래 된 ‘천주교 요리문답’ 에서 보면,

    제1문: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 났나뇨?'

         답: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태어 났느니라.'

즉, 인생의 목적은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회를 시작하신 이나시오 성인의 작품, ‘영신수련’ 23항에는 ‘사람이 이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믿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들은 취할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버릴 것입니다. ---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아마도 고전 ‘천주교  요리문답’ 제1문, 답이 이 ‘영신수련’ 에서 인용된 듯 합니다.



그런데, 근래 피정이나 묵상회에서 자주 듯는 노래중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 (#270)가 생각납니다.  알기 쉬운 말 그대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것 입니다. 사실 세상에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으니, 하느님을 알지 못하며, 하느님의 사랑도 알지 못하며, 하느님의 은총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구원도 모르며, 어떻게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신학적 인생관에서 좀 벗어나 쉽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제  ‘인생의 목적’을 어떻게 대답하면 좋겠습니까?  우선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 났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살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하느님께로 가야 만 하겠고, 하느님을 꼭 만나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니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셔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 3, 16)  &lt;이렇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 났습니다. 아멘!&gt;]]></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47: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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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그리스도 신앙 공동체의 기본문제 - 소통/합일과 친교]]></title>
			<link><![CDATA[https://leetaik.com/?kboard_content_redirect=35]]></link>
			<description><![CDATA[그리스도 신앙 공동체의 기본문제 - 소통/합일과 친교

이 창재

예수님께서 출가하시어 3년 동안,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시기 까지, 공생활기간에 하시던 복음사업, 오순절을 통하여 그 사업을 전수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주님이 하시던 그 복음사업을 이어 받아 계속하는 곳이 그리스도의 신앙 공동체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교회라 하며,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고, 교회의 지체는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이다.

2015년 어느 주일에 동내 미국교회의 미사에 참여하였는데, 아프리카 케냐에서 손임사제가 와서 그의 강론도 듣고, 관례대로 그분의 공동체를 위하여 2차 헌금도 했다. 그런데 영국식 영어로 해서 그런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잠시 주님의 복음사업을 묵상하면서 우리 교회 공동체의 소통(communication)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실감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하드라도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 달려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듣는 청중에게 알아 듣기 쉬운 비유로 하늘나라를 설명하시는 모습이야 말로 청중에 대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오순절 아침의 은총으로 시작된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는 주님과 소통하는 공동체이며 동시에 서로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였다. &lt;이집 저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gt;(사도 2; 46-47). 소통과 친교가 첫 신자 공동체의 기본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초기 신자 공동체가 로마의 험난한 박해시대를 거쳐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 가톨릭교회의 처지와 입장은 달라지게 되었다.

로마제국의 시민이 모두 국교가 된 가톨릭의 신도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결과로 소통과 친교를 기본자세로 하든 초기 공동체의 모습은 사라지고 새로운 신도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신앙지침의 교리서, 신도들을 지도하고 교계제도의 설정을 위한 교회법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제반 사항을 이미 법도로 확립한 로마제국의 관례를 손쉽게 따르게 되었으니 이것이 중세기를 거쳐 신도들을 사목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면모이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에서 소통과 친교를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할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하느님과의 소통을 원하여 광야로 나간 성자의 출현과 친교의 공동체로 수도원도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원도 교회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되니 수직의 체계가 고정되고 공동체가 성사중심으로 생활화 되다 보니 성직자 중심으로 소통되고 운영되었다.

하느님 (성삼)과의 소통이 신앙의 핵심이니 자연스럽게 수직 소통이 관행이 되어 하느님 (성삼)이 원하시는 수평  상호 소통의 신앙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교회생활에서 수평적 상호 소통의 확장을 위하여 노력하는 과제가 중요하다. 그러나 성찬의 전례가 교회 전례의 중심에 있어 영성체를 통해 신자들이 주님과 하나가 되는 소통의 신비가 이루어 지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다. 전반적으로 교회 전례가 모두 신자들을 하느님과의 소통을 과제로 하는데 특히 주님과 소통과 친교가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미사에서 &lt;영성체 예절&gt;-이라 하겠다. 이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께서 나와 하나가 되는 소통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과 공동체의 일원인 내가 하나로 결합하는 이 소통의 장을 공동체 생활에 확산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주일 미사때  &lt;말씀의 전례&gt;에서는 비록 소통이 어려웠지만, &lt;성찬의 전례&gt;에서 영성체를 하는 순간, 주님과 합일하는 소통의 극치를 실감하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주님께서 나에게 특별히 내려주신 이날의 &lt;교훈&gt;이라 생각되어 감격하며 감사를 드렸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46: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item>
				<item>
			<title><![CDATA[Vision of the Pentecost Movement/ KAPC]]></title>
			<link><![CDATA[https://leetaik.com/?kboard_content_redirect=34]]></link>
			<description><![CDATA[Vision of the Pentecost Movement/ Korean American Pentecost Community  

My dear friends, 

For the last 30 years, I have lived a new life in Grace of Pentecost morning. Eagerly, our Korean American friends and I have lived together and devoted ourselves to serve for Grace of Pentecost Morning. After 20 years of Services for the Korean communities in the Americas, I have served as the KCS chairman, finally retired. The result of this is this new book, . With the publication of this book, I have vowed before the Lord to devote the rest of my life for the Pentecost movement for my church community and its relation to the world. 

When I remember the bygone days when I was unsure if I could fully continue the road of consistent service, I first thank the Lord for his grace and your support as my companions. 

I hereby devote the rest of my life as consecrated to the Lord through Grace of Pentecost Morning.  I hope its message persuades all of you to pray for cooperation and participation in following our Lord’s guidance. 

 is a new title that complements the change in content from the 2009 publication  Life in the Holy Spirit  printed in Seoul, S. Korea.  Life in the Holy Spirit  was printed under the Korean Services Committee (KSC), distributed at KSC seminars.  This new book, however, contains a compilation of publications under the Korean American Pentecost Community (KAPC). Grace of Pentecost Morning  contains the modified contents and supplementary articles printed in Life in the Holy Spirit  with changed mastheads. 

In commitment to this new book, our community and I as CEO have represented the KAPC to the US-IRS tax exception foundation on March 19 2015, and opened www.pentecostmorning.com, along with quarterly distribution of the KAPC newsletter. 

KAPC is a Christian open community, faithful to the Grace of Pentecost Morning.  In the future, we hope to be a humble representational body that serves the wider Pentecostal Christian community in the Americas and the world. 

 Korea, as a nation, has historically progressed through trials and tribulations as did the chosen people of Israel. In the future, Israel will be jealous of a foolish nation   (Romans 10; 19). I am confident that the date of Korean unity will be the day of God’s hidden chosen people to open up to the whole world. 

  Five thousand years ago, when Great King Dan-gun founded Cho-Sun (The first Korean Kingdom) he set the national vision of &lt;弘益人間  四海同胞 (홍익인간 사해동포)&gt; that was for the benefit of all the people of the whole world. This establishment was unprecedented in world history and was one that heard God’s will. 

Two hundred years ago, during the evangelization of the Gospel of Christ to the Oriental countries, it was not foreign missionaries who taught the Gospel but Korean natives who taught amongst each other. So our Korean Catholic church is unique in this respect in the history of evangelization. 

The members of the KAPC that live here in the United States are descendants of this Korean Catholic lineage. The fire of grace started in the morning of Pentecost in Jerusalem 2000 years ago which will manifest itself again in a unified Korea that shines brightly to the world. One Korea as a nation (Romans 10; 19) will shine the light in the Orient. 

The Pentecostal movement is not a simple spiritual church movement. Throughout history and society, it has challenged us to create an innovative movement to change people’s being through a new life in Christ, and to see the realization of international peace by making a new era for all people. 

This is all within the will of God. The Holy Spirit is God’s leading fire, our vocation to accept the Lord’s call into the center of the Christian Community. It is the fire that renews all things, the light that guides our community, and the driving force of our services.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 I fear not, for you are with me.’  

 + Believe in the Trinity and always pray to God to be able to walk  with our Lord !            

Korean American Pentecostal Community   

Lee, Joseph Chang Jae, Chairman 

(Translated by Gregory Lee)]]></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45: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우리 민족은 동방의 선민인가? -3]]></title>
			<link><![CDATA[https://leetaik.com/?kboard_content_redirect=33]]></link>
			<description><![CDATA[우리 민족은 동방의 선민인가 ?  -3

이창재 

오늘날 종교 문화의 토착화는 서구적 그리스도교의 종교 식민주의의 극복이라는 세계적 과제로 인식되어 있는데, 한국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성경해석 근본주의자들의 영향하에 있는듯 합니다. 몇년전 서울 방문 때 느낀 것 인데 각 그리스도교단의 민족문제에 대한 견해가 서로 상반된 태도였습니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이 전파시킨 일부 기독교인들의 극단적인 우경화 현상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민족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형제의 회심(두)가 아니고 멸공을 그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교단간의 의식차이는 심각했습니다.

이와같은 교계의 역사현실 의식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저변에는 우리민족이 선민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 이라는 잠재 사상이 파급되고 있었습니다. &lt;우주만물과 인류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으로 당신의 외아들/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기 위해 일찌기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였으나 이스라엘은 그 구세주를 2천년동안 거부해 왔는데, 이제 세상 종말에 대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세주께로 회두시킬 사명을 수행하게 될 민족을 동방에서 선택하고 단련시켜 왔다. 그 민족이 바로 천손민족/ 배달민족 /동이족/ 韓민족이다&gt; 이것이 선민사상의 요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10; 19)에서 하느님의 선민들이 멸시하든 이방의 한 민족( A Nation)을 시기하게 되리라는 모세의 가르침과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여 결국 이스라엘이 그 민족(A Nation)의 출현으로 회개하게 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밝이지 못했으나 분명 하느님을 알지 못했든, 어리석은 민족 (A Nation)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교회는 이들을 이방 세계에 이룩된 그리스도교계를 지칭한다고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전은 그 이방 민족 가운데 분명하게 한 민족(A Nation)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한 민족(A Nation)이 어느 민족이란 말입니까?

그동안 우리는 그 한 민족(A Nation)을 서방 땅끝에 있는 Irish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St, Patrick 에 의하여 복음이 전해진 이 작은 섬은 오랫동안 大英帝國의 지배하에서도 한결 같이 자기네 신앙을 고수해 온 민족이며, 급기야 기근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대서양을 건너 영국의 새로운 식민지 신 대륙/미국에 이주하여 3등시민으로 천대를 받으며 살아 왔습니다. 미국의 독립이후 개신교가 득세한 이곳 미국에서 계속 성장하여 그리스도교의 주류를 이루게 되는 미국 천주교단의 고위 성직자 8활을 배출 하여 명실 공히 미국 천주교를 Irish Catholic 이라 지칭할 정도로 성장하였고, 1960년대에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Irish 대통령: John F. Kennedy 를 배출하게 되니 과연 Irish 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은 선민 이스라엘이 시기 질투할 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아 점차 세계정세가 변화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서방의 Irish가 아니라면,  동방의 Korean 가 과연  이스라엘이 시기 질투하게 되는 &lt;한 민족&gt; (A Nation)이겠는가 하는 역사적 과제, 바로 天命이 남아 있습니다.
동방의 한 선민이 우리 민족으로 만천하에 들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갈라진 우리민족이 하나로 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우리 민족의 염원인 동시에, 지난세기 일제침략과 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동서냉전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反人倫的, 현대사의 참담한 비극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이 시점에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하늘에 기도하는 우리의 자세는 과연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세계사적으로 서방의 선민으로 공인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아직 공인되지 않은채 장차 하느님의 啓示 로 들어나게 될 한 선민으로 &lt;한 민족&gt;(A Nation)이 있다는 발상은 바오로 서간 &lt;로마서&gt;(10장 19절)/ 바오로 사도가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 에 의하여 나왔습니다. 이 민족이 동방의 조선- Korea 라고 본것은 일제 강점기에 동경에 잠시 들린 인도의 詩聖 타골의 시&lt;동방의 등불&gt;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서방의 선민  &lt;이스라엘&gt;을 기준으로 보면 땅끝은 바로 극동의 한반도를 지칭하며, 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경로와 시기를 볼때 온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복음이 전해진 곳이 바로 우리 Korea-조선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민족이 &lt;相爭&gt;의 과오를 회개하고 남북 &lt;相生&gt;으로 통일이 성취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고차적인 정세판단의 결과가 아닙니다. 미천한 한낱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순절의 은총과 함께 받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단순한 신뢰입니다. 이것은 미천한 내가 받은 천명(天命)인데 장차 10년 단위로 좀 더 선명하게 들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은 미국정부가 한반도를 분활하였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그 책임을 지게 될 때 실현될 것입니다. 그 동안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중동에서 항상 어려운 선택을 해 왔는데, 장차 한국을 통일하기 위하여는 중국과 단순한 協力을 하는 것이 - 지배가 아니고 - 바로 역사의 순리인 것입니다. 온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43: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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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우리민족의 하느님과 미국선교사의 종교 제국주의 표상인 "하나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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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우리민족이 반만년 동안 한결 같이 믿어 온 우주의 창조주는 항상 하느님이었다. 그런데 난데 없이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이 하나님이라는 우리 말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예수를 전도한 미국 선교사들이 만든 종교제국주의 표상의 용어이다.

미국 선교사들은 후진국인 우리나라에 선진국 서구종교를 선교하면서 우리민족이 자고로 믿어온 하느님을 이방인의 신으로 격하시키고 자기네가 가지고 온 예수의 아버지 여호와를 후진국 이방인의 신과는 다르다고 구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예수교 신자들은 하나님이 유일신을 강조하기 위한 한분 뿐인 여호와의 올바른 호칭이라는 말 만 믿고 그것이 유일신에 대한 참된 신앙인줄 알고 그들을 따라 사용하였다. 이제는 세계가 하나의 이웃이 된 세상이다. 미국의 후진국에 대한 제국주의 정책이 도마에 오른지 오래 되었으며 이와 병행하여 후진국에 나간 종교 제국주의 선교사들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비판과 반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비록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중동에서 시작되었고 우리 민족이 250여년전에 처음으로 서학을 통하여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역사를 받을때, 다른 민족의 외래신앙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우리 민족이 나라를 세운 옛날 부터 믿어온 만물의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밤에 우당탕 번적번적 천둥번개하며 폭우가 내리치면 무서워서 엄마 품에 안기며 하느님을 경외하였고, 혹 잘못을 자행하는 이웃사람을 보면 ‘하느님이 무섭지 않나? 하였으니, 이땅에 불교문화가 꽃이 피고 유교사상이 나라를 지배했어도 우리 민족이 자고로 모든 잡신위에 있는 초월적인 조물주 하느님을 신봉해 왔던 것이다. 삼국시대에도 가을에 추수를 마치면 햇빛과 비를 주시어 풍작을 주신 하느님께 온 공동체가 나와 함께 제단을 쌓고 제천의식 으로 감사를 드리며 모두 함께 축제의 가무를 즐겼던 것이다.

미국선교사들은 이같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민족전통의 본질을 외면하고 단지 이방인의 한낱 우상숭배라고만 생각하였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어 보고, 우리의 桓檀古記를 상고해 보면 우리 민족이 천손민족으로서 – 비록 암묵적이지만, 하느님의 복음을 얼마나 애타게 추구한 민족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미 본인이1990년10월18일에 처음 평양을 방문했는데 20일(토요일) 조선기독교련맹 중앙위원회 를 방문했는데 북에서 해방후 처음으로 성경을 출간했다며 &lt;성경전서&gt; 한권을 귀한 선물로 받았다. 그 성경전서에는 분명 여호와 하느님이라 기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남한의 기독교신자 중에는 &lt;하나님&gt; 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하니 &lt;하나님은 우리말이 아닙니다&gt; 라고 간단히 대답 하였다. 그렇다, &lt;하나님&gt;은 우리 말이 아니며, 미국 선교사들이 만들어 낸 종교 제국주의 표상의 잘못된 용어이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lt;하나님&gt;에 대한 조어(造語)의 기원을 알고 하루 빨리 그 선교사들의 종교제국주의 영향에서 벗어 나기를 바란다.

우리민족은 천손민족(배달민족)으로서 자고로 세상만물을 창조한 조물주, 하느님을 믿어 왔던 것이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39:4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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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우리 민족은 동방의 선민인가?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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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우리 민족은 동방의 선민인가? –2

이창재

세계사적으로 서방의 선민으로 공인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아직 공인되지 않은채 장차 하느님의 啓示 로 들어나게 될 한 선민으로 &lt;한 민족&gt;(A Nation)이 있다는 발상은 이미&lt;우리민족은 동방의 선민인가 -1&gt; 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세의 가르침과 &lt;이사야 예언서&gt;를 인용한 바오로 서간 &lt;로마서&gt;(10장 19절)/ 바오로 사도가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 에 의하여 나왔고, 이 민족이 동방의 조선 KOREA- 라고 한 것은 일제 강점기에 동경에 잠시 들린 인도의 詩聖 타골의 시 &lt;동방의 등불&gt;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방의 선민  &lt;이스라엘&gt;을 기준으로 보면 땅끝은 바로 극동의 한반도를 지칭하며, 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경로와 시기를 볼때 온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복음이 전해진 곳이 바로 우리민족이었다. 우리민족교회가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한 바오로 사도가 시작한 복음의 선포와 주님 공동체의 설립으로 볼때 맨 마지막이었으니, 바오로사도의 가슴속에 품고 있던 한 민족, 그 이름도 위치도 모르며, 예측한 그 &lt;한 민족&gt;(A Nation)이 바로 우리 민족이었다 라고 하는 발상이 과연 우연이겠는가? 이미&lt;우리민족은 동방의 선민인가 -2&gt; 에서 언급된 우리민족사의 반만년을 돌아볼때 다시금 놀라움을 禁치 못한다. 민족의 역사를 돌아볼때 오직 한가지 문제은 우리 선조는 天孫民族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나, 하느님과 우리 민족공동체사이에 역사적으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通交의 사례를 찾을수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lt;아브라함&gt;을 비롯하여 삼대, 그리고 12지파, 모세를 통한 에짚트 탈출과 40년 광야생활, 환난중에 등장하는 예언자등, 그런데 우리는 민족사에서 면면히 흐르는 하느님의 섭리를 감지하면서도 이스라엘의 민족사에서 보여준 하느님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天啓가 없다. 이스라엘 민족은 수천년의 유랑역사중에 혈통이 섞이고, 국적과 언어가 달라도, 오직 한 줄기 하느님의 &lt;선민&gt;이라는 의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의식은 무엇인가? 역사상 우리민족의 환난중에 떨어져 나간 수많은 부족들이 동서남북에 상존하고 있음이 들어나고 있는데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하나의 공통의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귀속하지 못한다. 현재 우리의 민족의식은 하나의 공통언어와 문화전통, 국토, 혈통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천계가 아니다. 이제 남북분단의 역사가 70년이다. 100년을 넘기면 어찌 되겠는가. 그 안에 민족통일을 성취하고, 새로운 민족의식으로 성장되어야 한다. 우리민족이 통일을 성취하는 여정에서 우리민족이 태초에 천손민족이며, 하느님이 숨겨 놓은 &lt;동방의 선민&gt;임을 자각하고 온 천하에 들어 나도록 하느님의 권능을 기원해야 한다.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을 갈구해야 한다. 천계가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당대의 예언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lt;우리민족은 동방의 선민이다&gt;하는 &lt;민족 선민 의식&gt;으로 각성되어, 온 민족 성원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8:27:31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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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교계제도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개선(혁)에 대한 소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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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교계제도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개선(혁)에 대한 소망

이창재


예수님이 시작한 교회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어떠한 모습의 당신 교회를 세우셨는가? 예수님께서는 우선 12 사도를 뽑았고, 골고타에서 돌아가실 때 까지 3년동안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오순절을 통하여 세우신  그리스도공동체ㅡ초대교회

승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오순절 아침에 성령을 충만이 받은 제자들은 예수부활의 산 증인이  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스도를 따라 순교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이고,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되는 것은 성령충만으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하느님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의 신앙이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주 하느님의 종이 되어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봉사자로서의 자기직분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봉사자가 되면, 이들는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고, 때로는 일반 신자들이 가지지 못한 특권도 갖게 되며, 이를 즐겨 행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교회가 교계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교회

교회가 박해시대를 지나,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부터 교회의 본래 모습,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봉사자의 신분을 망각하게 되고 지상에 주님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점차 초대교회의 본래 모습을 상실하게 됩니다.

중세기 교회

로마제국의 법제를 도입한 로마 교회는 지상에서 주님의 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왕국을 건설한다는 생각으로, 세속적인 권력과 교계제도를 도입하며 세속화의 길을 더욱 가게 되었습니다.

현대 교회

 500여 년전  의 교회개혁운동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중심으로 가톨릭 교계제도는 더울 강화되어 왔습니다. 교회는 민주화되어 가는 현대사회를 외면하다가,  제2차 바디칸 공의회를 거쳐 탈바꿈을 시도하였으나 아직도 교회는 민주화되지 못한채, 전통적인 교계집단으로 남아 있습니다.

교계제도에 대한 반성

우선 그리스도인 모두가 자기 자신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임을 각성하고, 특히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특별히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한 자들은 자기신분/직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을 훈련시키는 신학교 교육과정도 개혁하여, 성직자 보다는 봉사자(목자)로 교육, 훈련시켜야 합니다.  성무집행을 단순화하고 일반 신자들에게도 성무집행의 기회를 주도록  해야 합니다. 특권의식은 바로 성직자의 성무집행 독점에서 나오게 됩니다. 교회 성직자는 왕조시대의 양반과 흡사하게 되고, 일반 교인은 성직을 넘보지 못하는 상민계급처럼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존재하게 된, 교계제도의 실태입니다.

교계제도에서 수장은 주교이며,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는데, 주교의 직분을 민주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가?  현재 교회 수도공동체에서는 수장을 임기제로 하고, 수도공동체의 회원들이 선거하듯, 교구장을 임기제로 할것이며, 주교를 교황이 임명하지 말고, 교구민(우선 교구 성직자)의 선거로 선출해야 합니다.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하는 오랜 전통을 시정하고, 단순히 로마의 주교/ 베드로사도의 후계자로서, 오직 주교들의 수장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사를 돌아 보면 중세기에 Jan Hus 라는 사제가 이와 비슷한 요지로 교회제도 개혁을 주장하다가 로마로 부터 신분을 박탈당하고, 종교재판에서 화형처분 되었습니다. Jan Hus 가 요한 바오로 II세에 의하여 복권되기는 하였지만, 그가 의도한 교계제도의 개혁은 시도되지 않았습니다. 그후 베네딕도 XVI세를 거쳐, 현재 프란시스코 교황에게 이를 기대하고 있으나, 그 성과는 의문입니다. 

교계제도 개선(혁)에 대한 소망/ 자세

오늘 이와 같은 제도개혁를 교회에 도입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단순한 개혁보다 혁신이라고 할 것입니다. 과연 이 같은 혁신으로 주님께서는 당신 교회를 바꾸실까 ?  주님께서는  2천년 전에도 당신 추종자들의 힘으로 교회를 세우시지 않았고, 홀로 당신자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오순절(성령강림)의 은총으로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주님께서는 그같이 추동자들의 힘을 원치 않으시고 오히려 신자들이 빠저나간 빈 회당에서 당신의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 하시지는 않는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신자들이 모두 신앙을 상실한 것이 아닐진대 우리는 와 그 추종자들이 지상의 People Power 로 주님의 교회개혁에 성공치 못한 사실을 다시 돌아 보게 됩니다. 과연 주님의 새로운 교회는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 즉 People Power 가 아닌, 오직 주님 성령의 불로 세워진다는 순수한 믿음과 소망, 그리고 신앙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의당 그리스도인들의 각성을 바라시지만 교회를 단순한 신자들의 집단으로 키우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로 육성하고 계신다는 확신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2000년전에 몸소 확실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신 교훈이라고 믿습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그리스도인의 가슴마다 당신의 불을 내리소서,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4:07:5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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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Future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 장차 교회는 ?Deacon]]></title>
			<link><![CDATA[https://leetaik.com/?kboard_content_redirect=29]]></link>
			<description><![CDATA[선진-서방교회, 그리고 후진-한국교회의 전망     

이 창재

그리스도 교회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서방의 전통 교회가 되었고, 중세기 말 교회개혁의 시도와 분열을 거친후 근대에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후진국들을 지배함에 따라서 그리스도교회의 각 교단이 세계화 되였으나  장차 서방 전통교회인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 틀을 계속 유지하겠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다. 하느님의 교회가 성장 발전하는 기본요인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교회는 세속적인 수단으로 성장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한때 교세가 세류의 물결을 탈 수 있겠으나 그것은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회 역사가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느님의 교회는 오직 하느님이 부르신 사람들의 응답으로 성장 발전한다. 일반신자는 물론이요 봉사 일꾼들의 소명과 응답 여부가 결국 교세를 좌우한다. 오늘날 서방교회의 몰락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일반신자들의 각성과 성소(성직소명)의 고갈에 있다. 신자들의 각성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본래의 사명을 잘 못 지향해 온 결과이며 성소의 고갈은 순수하지 못했던 성직에 대한 정화과정으로, 순결한 성소의 고귀성을 새롭게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그간 세속적이던 서방교회가 하느님의 뜻으로 정화되는 시기라고  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향후 서방교회가 어디로 갈 것이며 후진 그리스도교회의 하나인 한국교회가 나아 갈 길은 어디겠나 하는 것을 묵상한다.

1.	그동안 로마 가톨릭교회로서 전통을 이어온 서방교회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심각한 정화과정을 맞이 하였다.  성소는 고갈상태이며 현란한 성화로 장식된 성당은 텅 비어 있다. 하느님의 백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이제 성당이 하느님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는가?  아니면 그들 스스로 하느님의 백성임을 포기했는가? 성당은 이제 하느님을 예배하는 사람들로 채우기 보다 음악회관 또는 미술 전시관, 항차 고급식당으로 전환되기 까지 하여 입당하는 사람들을 환영한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서구의 현실 상황을 관찰하고 나는 이 현상이 서방교회의 몰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정화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하느님의 백성이 지상교회와 분리되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연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자. 지금 시대는 계급사회가 아니고 다양한 직무의 시대이다. 교계제도는 로마제국이 서방세계의 중심이던 시대의 유물이다. 교회는 성직자만이 성무집행을 해야 한다는 틀로 성직자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성직 소명을 명분으로 교계제도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서방교회 사람들은 각성되어 성직의 소명은 사람들 위에서 공동체를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의 봉사자로 불리운 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공동체를 이끄는것은 성직자의 특권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참된 지도자는 회중의 선거로 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히게 되었다. 자연히 성직 성소의 참 뜻이 정화되어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봉사자가 될 사람만이 사제직에 나오게 되었다. 사제직을 득세라고 생각하던 성직 특권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서방교회의 장래는 오직 하느님의 성소와 응답에 달려 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그 무엇으로도 하느님의 교회를  이르킬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초대교회의 모습을 되 찾기 위하여 오순절 아침의 은총을 입기를 바란다. 서방교회는 하느님만을 의지하여 하루 빨리 로마제국의 국교라는 세속적 권위의 탈을 벗어 던저야 한다.

2.	 나는 현지 미국 대교구 봉사 성직자로서 한인성당을 떠난지 오래(23년) 되었다. 어쩌다 한인 공동체에 가서 전례에 참석하고 한인사제의 강론도 듣게 되는데 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지금이 21세기인데 저 사제분은 19세기의 의식으로 사목하고 있는가? 저분은 사제로서 현 교황님의 최근 뉴스 기사도 읽지 않고, 관심도 없다는 말인가?  저분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사제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왕궁의 왕자가 된양 성직 특권의식을 가진듯 한데 마치 이조시대의 원님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팔순 가까운 이 늙은이에게도 이토록 어이없게 보이는데, 요사이 젊은 세대가 이를 어찌 감당할까 걱정이 된다. 이것이 한인성당 사목자의 일반적 경향이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한인 사목자도 문제이지만 이를 그냥 받고 있는 신자들 역시 문제이다.    한국교회는 성직 성소의 추세, 한국 신학교의 교육현황, 사제 인사 행정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재 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미국에 이민 오기 이전에도 한국교회가 너무 로마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초창기에 선교사의 입국이 없어 스스로 북경에 찾아가 복음을 받아온  주체교회였는데 지금은 너무 성직 중심, 성직자에 의존하는 교회가 되었다.  한때 한국교회의 수장이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북한(평양)교회는 성직자가 없기 때문에 교회가 아니라고 까지 말하는 것을 듣고  한국교회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었다. &lt;교회인가? 아닌가?&gt;는 성직자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요, 하느님의 &lt;백성이냐 아니냐?&gt; 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의 백성이 먼저고 성직자는 그 다음이다. 이것이 오순절 은총의 그리스도 교회인 것이다.
전통교회는 주님이 현존하는 성찬의 전례를 예배의 중심으로 하여 왔고, 이 전례는 오직 사도와 공동체의 원로들(오늘날의 사제제도)에게만 허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선 초대 교회 5년 동안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 성찬의 전례가 없었고 이 때문에  교회가 아니라는 편협한  견해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당시 조선교회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자체의 성직제도(주교와 사제)를 세우기도 하였다. 곧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이를 말소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교회사에 나오는 &lt;假 성직제도&gt;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감히 우리 조선교회사의 독창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신 교회 성직제도의 &lt;元形&gt;이 아니겠는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신학과 새로운 의식으로 장차 서방교회와 세계교회를 개혁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 싶다.

3.	오늘날 사제의 독신제와 여성사제 서임에 대하여 계속되는 교회 저변의 제안에 대한 바디칸 당국의  전통적인 반응을 보면서 장차 교회의 전망을 우려한다. 나는 신학자가 아니나 이것은 신학의 주제이면서도 주님의 뜻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lt;하느님의 백성&gt; 이기 때문이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4:06:25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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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원수사랑은 인류구원의 신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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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원수사랑은 인류구원의 신비



                                                                                             묵상            이창재        

 

율법과 예언서의 완성.   

연중 (A해) 제 6주일 복음 (Mat 5,17-37)

                                                                                                                                                                                                                                              

주일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Matt 5, 17)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율법의 기본은 +계명인데, +계명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되니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온전히 하느님의 율법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어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사랑을 증명하시었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심으로서 율법과 예언서을 온전히 완성하신 것입니다. 아멘.

  



원수를 사랑하여라. 

연중 (A해) 제 7주일 복음 (Mat 5,38-48)  



주일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Matt 5, 44)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원수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하여 하느님의 원수가 된 사람의 구원사적 한계를 넘어서는 인류구원의 계명으로서  +계명을  통합한 새로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잘못으로 하느님의 은총에서 쫏겨난 인류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구원되기 위하여서 새로운 인류의 아담, 하느님의 아들이며,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속죄제물로 봉헌 되므로서, 비로서 하느님의 정의가 완성되어  +계명을 완결한  '새로운 사랑의  계명', 즉  하느님과 사람을 화해시킨  '天人合一' 의 계명,  이는 인류구원사에서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며, 사람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이 이룩하신, '인류구원의 신비’  입니다. 아멘.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 분의 뒤를 따라 각자 자기 +자가를 짊어 지고

&lt;원수 사랑의 길&gt;을 따르기고 서약한 자들입니다. 이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결심하지만 인간의 능력만으로 실천하기는 어렵고, 하느님 성령의 현존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나 깨나 하느님 성령의 현존 가운데 있기를 열망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lt;오순절 아침의 은총&gt;으로 살아야만 하겠습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4:05:2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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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우리 인생의 목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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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우리 '인생의 목적'

    

                                 


                                                                              이창재


마태오 복음(6, 26-34)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수 없다.  - 너희는 주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우리는 가끔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는 사는가? 과연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목적도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오래 된 ‘천주교 요리문답’ 에서 보면,
    제1문: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 났나뇨?'
         답: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태어 났느니라.'
즉, 인생의 목적은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회를 시작하신 이나시오 성인의 작품, ‘영신수련’ 23항에는 ‘사람이 이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믿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들은 취할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버릴 것입니다. ---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아마도 고전 ‘천주교  요리문답’ 제1문, 답이 이 ‘영신수련’ 에서 인용된 듯 합니다.


그런데, 근래 피정이나 묵상회에서 자주 듯는 노래중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알기 쉬운 말 그대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것 입니다. 사실 세상에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으니, 하느님을 알지 못하며, 하느님의 사랑도 알지 못하며, 하느님의 은총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구원도 모르며, 어뗗게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신학적 인생관에서 좀 벗어나 쉽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제  ‘인생의 목적’을 어떻게 대답하면 좋겠습니까?  우선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 났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살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하느님께로 가야 만 하겠고, 하느님을 꼭 만나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니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셔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 3, 16)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 났습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4:04:2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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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미주 천주교 한인공동체에 대한 소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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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미주에 있는 천주교 한인공동체에 대한 소견



이창재  (Dn. Joseph Chang J. Lee)



미주(미국, 카나다, 멕시코)내 큰도시에는 대략 한인 천주교신자들이 모이는 한인 공동체가 있으며 공식으로 현지 각 교구에 소속되어 있다. 대부분 공동체들이 한국교회에서 일정기간 파견나온 한국사제들이 사목하고 있으며, 일부는 현지 교구출신 한인 1.5세 또는 2세 사제들이 사목을 하고 있다. 우리보다 뒤 늦게 시작한 베트남 공동체가 있는데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 한인공동체와 비교가 되고 있다. 오늘 이에 대한 나의 소견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우리보다 늦게 시작한 미주 베트남 공동체가 우리보다 더 많은 신학생, 사제, 종신부제를 배출하고 있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가진다. 그들은 2013년말 현재 우리에게 아직 없는 보좌주교들도 배출하였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1)  먼저 우리는 본국 교회와의 관계를 견주어 보게 된다. 베트남 사람들은 피난민으로 미국에 정착하였기에 공산당정권하에 있는 본국 교회와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다. 그 때문에 미주의 신자들 중심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도모한다. 흡사 우리 한국초기교회의 모습과 같다. 그런데 한인교회의 실상을 보면 너무나 본국 교회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의존의 정도가 넘어서 아예 미주 한인공동체는 본국교회의 식민지 교회와 흡사한 형편이다.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사제들의 의식을 보건대 베트남 공동체는 독자적이며 미주의 현지 교구에 적응하고 있는데, 한인 공동체의 경우는 한국교회의 식민지 관리와 흡사하다. 이같은 현상을 보면서 우선 한인 성직자의 의식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2) 다음으로 고려되는 문제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교계제도에 대한 관행이다. 교계제도는 중세기적 잔재로 현대교회발전에 있어 장애요소의 하나인데 특히 한국교회는 초기 순교시기 성직자에 대한 고귀성과 당시 조선의 역사적 상황의 영향으로 성직자와 일반신자와의 관계가 마치 양반과 상민과의 관계처럼 정착되어,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전 근대적 관행 의식이 그대로 전수되어 교회 공동체가 하느님의 백성의 공동체로 자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성직자의 전행으로 좌우되고 있는 형편인데, 이 성직자들이 한국에서 미주 한인공동체로 파견되어 왔으니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3) 한국 교구에서 파견나온 사제는 3~5년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면 그만이오, 한국 교구에서는 다른 사제를 파견하게 된다. 마치 식민지의 총독을 바꾸는 식이다. 그러나 베트남 공동체는 다르다. 후임자를 위하여 준비한다. 신학생이 필요하다. 사목 동역자로서 종신부제도 필요하고 평신도 봉사자도 필요하다. 현지 교구에 적극적으로 적응, 공동체가 성장하는 사목을 하고 있다. 그들은 사제가 부족한 미주 교구의 요구에 부응하여 현지 교구의 본당 사목자로 부임하여 현지 신자들을 돌 보면서 자기네 베트남 교민들의 공동체를 살려나가고 있다. 이는 우리 한인교회 사목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4) 공동점은 그들도 우리와 같이 순교자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117위의 순교 성인을 뫼시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성인들의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다. 자기가 사목하는 미주 교구 본당의 이름(성인이름)을 그대로 지키고 영어권 신자의 사목을 전념하는 가운데, 별도로 베트남 교민사목 즉 베트남 미사를 하면서 베트남 공동체를 충실하게 유지 발전시기고 있다. 반면, 한인공동체들은 적은 수가 모여도 돈을 모아 자체성전(건물)을 구입하고, 한국에서 사제를 영입하여 현지 교구에서는 생소한 한인성인의 이름으로 한인교회 또는 한인 공동체를 세우고 한인사목만을 전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미주내의 한인공동체 수는 많지만 현지 교구출신 사목자수는 많지 않다.  현재 미주에서 베트남 사목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목하고 있는 한인 사목자는 아주 극소수이다.



5)  그렇다면 앞으로 미주에 있는 한인공동체가 한국교회로 부터 보다 자유롭게 되기 위하여 어찌 할 것인가? 앞으로 50~100년후를 내다 보면, 이와 같은 현실은 어떻게 될까? 만일 100년후를 내다 본다면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면, 그 해결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미주 현지교구 (미국 주교회의 산하)의 상황인식과 정책적응이 긴요하다. 그런데 현재 현지교구나 미국주교회의 당국자와  접촉할 수 있는 미주한인천주교공동체를 대변할 대표기관이 부실하다. 이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둘째로 한국에서 파견하온 사목자들의 각성이 절실하다. 그들에게는 먼저 미주 한인사묵에 올바른 자세가 정립되어야 한다. 잠시 미주 한인교포사목을 위하여 다녀간다는 뜨내기 사목자의 신분을 시정하고 이곳에서 현지신자들과 함께 살겠다는 선교사의 자세가 되어야 하며, 그리하기 위하여 스스로 가급적 현지교구에 입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서 자란 한인 2세 사목자와 더불어 미주 한인 공동체의 목자로 태어 나게 될 것이다.



6) 동정 성모 마리아는 미국교회의 주보이며, 과달루페의 모후는 미대륙의 주보 이고, 무염시태 성모 마리아는 정배이신 성요셉와 함께 한국교회의 주보이다. 역시 성모님은 베트남 교회의 주보이다.  베트남 교회는 집권자의 박해중인 1798년에 성모님의 첫 발현이 있었다.  바로 ‘라방의 모후’  (Our Lady of La Vang)이시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라방의 복되신 성모님’(The Blessed Mother of La Vang)은 박해와 시련중에 있는 베트남 인민과 나라의 피난처, 수호자로서 언제나 그들의 중심에 서 왔다. 여기서 베트남 민족성은 인류구원과 세계평화라는 세계사적 영성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교회도 이제 신앙의 민족자전의 자부심에만 급급하지 말고 우리 민족국가인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사해동포’의 세계사적인 영성을 수용, 적립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제 조국통일과 민족중흥을 위하여 우리의 수호자이신 성모 마리아에게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조국땅, 갈기 갈기 찢어진 우리인민 가운데  발현하시어 우리민족이 하나가 되도록 이끄시는 기적을 간청하자. 우리 모두 기도하자!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4:03: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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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우리 민족은 동방의 선민인가? -1]]></title>
			<link><![CDATA[https://leetaik.com/?kboard_content_redirect=25]]></link>
			<description><![CDATA[우리 민족은 동방의 선민인가? 

이창재  (2013년 여름)

오늘날 종교 문화의 토착화는 서구적 그리스도교의 종교 식민주의의 극복이라는 세계적 과제로 인식되어 있는데, 한국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성경해석에서 근본주의자들의 영향하에 있는듯 합니다.  2013년 6월에 서울 방문 때 느낀 것 인데 각 그리스도교단이 민족문제에 대하여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이 전파시킨 일부 기독교인들의 극단적인 우경화 현상이 보였습니다. 그들중에는 민족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멸공을 그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교단간의 의식 차이는 심각 했습니다.

이와같은 교계의 역사의식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저변에는 우리민족이 선민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 이라는 잠재 사상이 파급되고 있었습니다. &lt;우주만물과 인류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으로 당신의 외아들/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기 위해 일찌기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였으나 이스라엘은 그 구세주를 2천년동안 거부해 왔는데, 이제 세상 종말에 대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세주께로 회두시킬 사명을 수행하게 될 민족을 동방에서 선택하고  단련시켜 왔다. 그 민족이 바로 천손민족/ 배달민족 /동이족/ 韓민족 이다&gt; 이것이 선민사상의 요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10; 19)에서 하느님의 선민들이 멸시하든 이방의 한 민족( A Nation)을 시기하게 되리라는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여 결국 이스라엘이 그 민족(A Nation)의 출현으로 회개하게 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밝이지 않았으나 분명 하느님을 알지 못했든, 어리석은 한 민족(A Nation)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교회는 이들을 이방세계에 이룩된 그리스도교회를 지칭한다고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전은 그 이방민족 가운데 한 민족(A Nation)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한 민족(A Nation)이 어느 민족이란 말입니까?

동방의 한 선민이 우리 민족으로  만천하에 들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갈라진 우리나라가 하나로 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우리 韓민족의 염원인 동시에, 지난세기 일제침략과 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동서냉전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반인륜적, 현대사의 참담한 비극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이 시점에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의 자세는 과연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우리민족이 &lt;상쟁&gt;의 과오를 회개하고 남북 &lt;상생&gt;으로 통일이 성취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고차적인 정세판단의 결과가 아닙니다. 미천한  한낱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순절의 은총과 함께 받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단순한 신뢰입니다. 이것은 내가 받은 천명(天命)인데 장차 10년 단위로 좀 더 선명하게 들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은 미국이 한반도를 분활하였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그 책임을 지게 될 때 실현될 것입니다. 그 동안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중동에서 항상 어려운 선택을 해 왔는데, 장차 한국을 통일하기 위하여는 중국과 단순한 협력을 하게 되는 것이 -지배가 아니고- 바로 역사의 순리인 것입니다.

온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4:02:1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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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우리민족의 &lt;하느님&gt;과 미국 선교사들의 &lt;하나님&gt;]]></title>
			<link><![CDATA[https://leetaik.com/?kboard_content_redirect=24]]></link>
			<description><![CDATA[우리민족의 &lt;하느님&gt;과  미국 선교사들의  &lt;하나님&gt;

                                                                                               이  창 재



우리민족이 반만년 동안 한결 같이 믿어 온 세상만물의 창조주는 항상 하느님이었다. 그런데 난데 없이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이 하나님이라는 우리 말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예수를 전도한 미국 선교사들이 만든 종교제국주의 표상의 용어이다.



미국 선교사들은 후진국인 우리나라에 선진국인 서구의 종교를 선교하면서 우리민족이 자고로 믿어온 하느님을 이방인의 신으로 격하시키고 자기네가 가지고 온 예수의 아버지 여호와를 후진국 이방인의 신과는 다르다고 구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예수교 신자들은 하나님이 유일신을 강조하기 위한 한분 뿐인 여호와의 올바른 호칭이라는 말 만 믿고 그것이 유일신에 대한 참된 신앙인 줄 알고 그들을 따라서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세계가 하나의 이웃이 된 세상이다. 미국의 후진국에 대한 제국주의 정책이 도마에 오른지 오래 되었으며 이에 따라 후진국에 나간 종교 제국주의 선교사들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비판과 반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비록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중동에서 시작되었고  우리 민족이 200여년전에 처음으로 서학을 통하여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를 다른 민족의 외래신앙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우리 민족이 나라를 세운 옛날 부터 조물주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밤에 우당탕 번적번적 천둥번개하며 폭우가 내리치면 무서워서 엄마 품에 안기며 하느님을 경외하였고, 혹 잘못을 자행하는 이웃사람을 보면 ‘하느님이 무섭지 않나? 하였으니, 이땅에 불교문화가  꽃이 피고 유교사상이 나라를 지배했어도 우리 민족은 자고로 모든 잡신위에 있는 초월적인 조물주이신 하느님을 항상 신봉해 왔던 것이다. 삼국시대에도 가을에 추수를 마치면 햇빛과 비를 주시어 풍작을 주신 하느님께 온 공동체가 나와 함께 제단을 쌓고 제천의식으로 감사를 드리며, 모두 함께 어울려 가무를 즐겼던 것이다.

 미국선교사들은  이같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민족전통의 본질을 외면하고 단지 이방인의 한낱 우상숭배라고만 생각하였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어 보면 우리 민족이 자고로  천손민족으로서 –비록 암묵적이지만,  구세주의 구원 복음을 얼마나 애타게 추구한 민족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미 이야기하였지만 본인이 1990년10월에 처음 평양을 방문했을 때 조선기도교도연맹 중앙위원회를 방문했는데 북에서 해방후 처음으로 성경을 출간했다며 &lt;성경전서&gt; 한권을 귀한 선물로 받았다. 그 성경전서에는 분명 여호와 하느님이라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서 남한의 기독교신자중에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하니, '하나님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라고 간단히 대답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 말이 아니며 미국 선교사들이 만들어 낸 종교 제국주의 표상의 잘못된 용어일 뿐이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조어(造語)의 기원을 알고 하루 빨리 그 선교사들의 종교제국주의적 영향에서 벗어 나기를 바란다. 우리민족은 천손민족으로서 옛날 부터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재하시는 &lt;하느님&gt;만을 믿어 왔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4:00:5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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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Visiting N. Korea (3) 북한 농업지원사업 / (4) 천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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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996년 평양 방문 (3)  북한 농업지원사업 



그동안 나는 존경하는 부부가 주관 해온 북한 농업지원사업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선배이신 이사장이 병환으로 작고하신 다음 종자 전문가인 부인께서 재단 이사장이 되었고, 내가 부이사장을 맞게 되었다. 북에서는 이 분의 애국충정과 종자분야에서의 세계적인 전문성을 알고 농업성에서 직접 초청하고 자문하는 관계였다. 그리하여 오래전 부터 이분은 미국과 서구 선진농업 기술로 낙후한 북의 농업진흥을 위하여 도와주고 있었다. 수년전 처음에 이분을 만나서 관계를 맺게 한 사람이 또한 최(철만)참사였다. 그래서 이분도 최참사의 행방에 대하여 대단히 궁금해 온 터였다. 그간 이분은 거의 매년 두번씩, 봄 가을로 북행을 하면서 최참사를 만나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한채 이번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영농장을 위하여 특별지도 자문차 방문하는 일정에 내가 동행하게 되었다. 나는 농업전문가는 아니나 전통이 있는 유명한 충남 예산농고 출신에다 북에서 인정하는 부이사장 직함으로 방북하게 되었다. 나의 평양방문의 목적은 북한 농업지원단에 참가하여 최(철만)참사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다.

최참사는 해외동포원호위원회 미주 담당 참사에서 문책되어 노동당 당사편찬위원회로 전근해서 근무(내근)중이며 언제나 다시 다른 직책으로 나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 해외동포원호위원회 미주담당 참사(위원장 아래에 있는 챔임자)로서 어느 미국에서 온 불실한 사업가의 허풍에 속았기 때문이란다. 자칭 사업가의 대북지원사업에 대한 약속에 속아 이 재미동포 사기성 사업가를 상부에 추천하였는데 결국 북과의 실제 합작사업을 추진하는 단계에서 이 사업가의 바닥(마각)이 들어난 것이었다. 그 책임은 온전히 담당 책임자인 최참사의 몫이 되었고 내근으로 이동한 후에는 일체 이전 사업과는 관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우리의 애국적이고 역사적인 인재양성의 부픈기대는 하나의 애처러운 일장춘몽으로 끝이 난 것이였다. 이로서 나의 방북여정은 끝장이 났고, 나에게 다시는 평양을 방문할 이유도 없었다.





1998년 평양 방문 (4)  천명



그러 함에도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평양방문을 하였던 것은 형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라는 그리스도의  교훈과  동족에 대한 민족사적 양심과 역사의식의 발로에서였다. 2001년 1월 그해 겨울은 참으로 혹독하게 추웠다. 산에 나무가 없어서 매년 되풀이되는 홍수피해로 흉작인데다가 혹독한 겨울을 맞아서, 북은 전국적으로 식량란과 난방에 곤역을 겪고 있었다. 북은 모든 비영리(NGO)지원단체에 SOS를 보내왔다. 물론 우리 도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재단의 주요간부들이 추념하여 긴급식량을 화차로 중국에서 구입하여 의주에서 평양으로 수송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 재단 이사장과 동행으로 평양 고려호텔에 투숙하였는데 그 큰 호텔에 난방을 하지 않고 작은 전기난로 하나씩 주어서 침대곁에 두고 간신이 새우잠을 잘 수 있게 하였다. 호텔과 고층 아파트의 온수는 평양 중앙공장에서 지하관을 통하여 공급한다고 하는데 앞에 보이는 고층 아파트들이 모두 난방이 없다 하니 걱정스러웠다. 점심식사를 위하여 평소에 다니든 식당에 가면 식당이 너무 추워서 외투를 벗지 못하였고, 금방 배달된 음식이 빨리 식으니 급히 먹고 나와야 하는데 종업원들은 외투가 없이 떨고 서 있으니 불쌍하고 딱하였다. 온 평양시 전체가 어름덩어리 같은 느낌인데 우리는 그 속에서 조국의 통일 염원을 기원하며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하던 하루 원호위원회 안내원중 우리와 친하게 지내던 한 분이 우리에게 주저하며 내놓은 부탁이 우리를 당황하게 하였다. 부탁인즉 우리들의 지원양곡 화차가 중국에서 들어오고 있으니 이것은 정부의 방침대로 인민의 식량배급으로 나가게 되는데, (해외동포들의 창구인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요원들이 지난 몇주째 식량배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기들에게 언제 배급되어 돌아올찌 기약이 없으니 만일 우리가 허락해 준다면 그중에 한 트럭분을 자기들이 긴급 수송하여 해외동포 원호위원회 요원들이 우선 배급을 받을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인다. 이것이 당시 북에서 살고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나는 미국의 집에 돌아오며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우리 조국은 살아 남아서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되고, 하느님의 섭리대로 동방의 등불로서 세계평화를 지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lt;천명&gt;이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Feb 2023 13:58:3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leetaik.com/?kboard_redirect=2"><![CDATA[Chairman Corne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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